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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 에세이집 《나의 단어》네 번째 이야기 “남중이의 단어, ‘마비'”

2025.01.02

  • #위드유커뮤니티
  • #자립준비청년
  • #자립준비

《나의 단어》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실시한 자립준비청년 자조모임 ‘위드유 커뮤니티’의 활동 결과물로 제작된 에세이집입니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란?
아동 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에서 생활하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어 생활하던 시설에서 나와 홀로 자립해야 하는 청년을 뜻합니다.

 

5명(김남중·김윤경·박태양·안준·이다원)의 자립준비청년들은
세방이의순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된 위드유 커뮤니티를 통해 에세이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단어를 4가지씩 선정해 자기만의 소중한 추억과 행복한 경험, 꿈과 다짐이 담긴 글들을 작성했습니다.

그 글들 중 감동을 주는 에세이를 하나씩 뽑아 5회에 걸쳐 <홈페이지 스토리>와 <홀트소식>에 싣습니다.

이 글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이 만들어가는 희망찬 미래에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삐이이이⋯’ 갑자기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5~10초의 짧은 이명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30초에서 1분이나 이명이 지속됐다.
답답하고 이상했지만 바보같이 그냥 넘어갔다.

며칠 후 이명이 도졌다.
이제는 관자놀이를 뾰족한 물건으로 찌르는 듯한 강한 통증이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날 괴롭혔다.

이윽고 왼쪽 귀 뒷자락부터 목까지 뻐근함과 강한 뭉침이 전해져왔다.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몇 시간이나 뒤척이다 잠시 잠잠해지자 얕은 잠에 들었다.

 

 

 

 

 

‘띠리리리리리링⋯’ 알람이 세차게 머리맡에서 진동했다.
부족한 수면 탓인지 신경은 예민해져 있었지만 얼굴의 이상한 느낌은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거울을 바라봤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놀라 빠르게 눈을 깜빡여 봤다.

왼쪽 눈이 감기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깜빡여도 오른쪽 눈만 감겼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치 단단하게 굳어버린 찰흙처럼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 경험해 보는 느낌이랄까.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뿌옇게 앞을 가리는 눈을 비비고 양치를 시작했다.
입을 헹구고 양칫물을 뱉는 순간 물이 입 한쪽으로 줄줄 새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알아챘다.
내 얼굴에 마비가 왔다는 것을.

 

 

 

 

 

누구에게 물어볼 데도 없어 급히 핸드폰으로 ‘얼굴이 움직이지 않음’이라고 검색하니
친절하게 ‘구안와사’와 ‘안면마비’라는 단어가 줄지어 표시되었다.

신경과를 방문해 보라는 글을 보고 곧장 신경과로 달려갔다.
신경과는 난생처음 가봤는데 진료 내용에 안면마비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제대로 왔다 싶어 잠시 안도했지만, 의사의 냉담한 반응에 나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선생님, 눈이 감기질 않는데 잘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서럽고 막막했다.

 

 

 

 

 

곧장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며 약을 처방해 줬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두려운 생각에 다른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생각도 고민도 걱정도 좀 내려놓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그래야 빨리 완쾌된다고 했다.

이후 괜찮아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외관상 차도는 거의 없었다.
결국 과거에 자주 다녔던, 아주 친절한 의사선생님이 계시는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선생님은 안면마비(벨마비)의 7레벨 중 5.5~6레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 병원에서 어떤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적어주시고 오랜 시간 설명과 질문에 답변해 주셨다.
참 감사했다.

 

 

 

 

 

나는 두려움과 불편함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곧장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권했던 한방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또 잘 때는 테이프로 눈을 고정시키고 인공눈물을 자주 넣으며 눈을 관리했다.
그렇게 4개월쯤 흘렀을까? 드디어 왼쪽 눈이 남기기 시작했다.

눈을 깜빡이면 두 눈이 동시에 감기고 안면 근육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골든타임을 놓쳤거나 관리가 부족했던 때문인지 안면 연합운동과 비대칭이라는 후유증이 남았다.
날씨가 추워지면 근육이 더 굳어지는 것 같았고, 원하지 않아도 자주 눈물이 흘렀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한건 변해버린 외모였다.
누군가 내 얼굴을 쳐다보면 괜히 눈길을 피했고 대화를 나눌 때면 다른 곳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평소 좋아했던 사진 찍는 것도 점점 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3~4년쯤 흘렀을까?
1~2년 차에 보였던 증상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러려니 하고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거울을 보면 ‘그래⋯ 이만한 게 어디야’라고 생각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에 괴로워하기보다 이만큼 회복된 것에 감사하고 내 모습을 소중하게 여기고 수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며 조금씩 긍정적인 희망을 그려갔다.

덕분에 후유증을 호전시킬 수 있는 치료 방법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틈틈이 시간을 내어 후유증 치료를 받으며 나의 외모와 마음가짐을 돌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혹시 여러분 삶의 마비는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마비란 심신이 아프거나 혼란스럽고 괴로워 본래의 기능과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마비는 어느 순간에나 다양한 형태로 찾아올 수 있다.

문제는, 타인은 그 크기를 가늠하지만 자신에게는 아주 크게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내 마비를 아주 단순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서럽고 서운하기도 하고 가끔은 분하기도 하다.
처음 방문했던 병원에서처럼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달고 오는 격이 되고 만다.

 

 

 

 

 

사실 마비를 해소하는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자립을 준비하고 당당히 홀로서기를 했다고 자부하는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글을 통해 내 이야기를 나누고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삶의 마비를 풀어가는 것은 내 몫이고 내 의지라고.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보며 수용하는 태도가 점점 단단해지면
지금 심각하게 겪고 있는 마비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마비가 좀 더 유연하고 빠르게, 또 쉽게 해소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만약, 지금 일상에 감정의 마비, 생각의 마비, 상황의 마비 등 너무 많은 마비가 찾아와 있다면,
다음의 티베트 속담을 한 번쯤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찰나의 순간이라도 내게 찾아온 마비를 잠시 관찰하고 알아차림으로써 현명하게 누그러뜨리길 소망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캠페인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나의 단어》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실시한
자립준비청년 자조모임 ‘위드유 커뮤니티’의
활동 결과물로 제작된 에세이집입니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란?
아동 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에서 생활하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어 생활하던 시설에서 나와
홀로 자립해야 하는 청년을 뜻합니다.

 

5명(김남중·김윤경·박태양·안준·이다원)의 자립준비청년들은
세방이의순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된 위드유 커뮤니티를 통해
에세이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단어를 4가지씩 선정해 자기만의 소중한 추억과 행복한 경험,
꿈과 다짐이 담긴 글들을 작성했습니다.

그 글들 중 감동을 주는 에세이를 하나씩 뽑아 5회에 걸쳐
<홈페이지 스토리>와 <홀트소식>에 싣습니다.

이 글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이 만들어가는 희망찬 미래에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삐이이이⋯’ 갑자기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5~10초의 짧은 이명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30초에서 1분이나 이명이 지속됐다.
답답하고 이상했지만 바보같이 그냥 넘어갔다.

며칠 후 이명이 도졌다.
이제는 관자놀이를 뾰족한 물건으로 찌르는 듯한
강한 통증이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날 괴롭혔다.

이윽고 왼쪽 귀 뒷자락부터 목까지
뻐근함과 강한 뭉침이 전해져왔다.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몇 시간이나 뒤척이다 잠시 잠잠해지자 얕은 잠에 들었다.

 

 

 

‘띠리리리리리링⋯’ 알람이 세차게 머리맡에서 진동했다.
부족한 수면 탓인지 신경은 예민해져 있었지만
얼굴의 이상한 느낌은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거울을 바라봤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놀라 빠르게 눈을 깜빡여 봤다.

왼쪽 눈이 감기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깜빡여도 오른쪽 눈만 감겼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치 단단하게 굳어버린 찰흙처럼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 경험해 보는 느낌이랄까.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뿌옇게
앞을 가리는 눈을 비비고 양치를 시작했다.

입을 헹구고 양칫물을 뱉는 순간
물이 입 한쪽으로 줄줄 새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알아챘다.
내 얼굴에 마비가 왔다는 것을.

 

 

 

누구에게 물어볼 데도 없어 급히 핸드폰으로 ‘얼굴이 움직이지
않음’이라고 검색하니 친절하게 ‘구안와사’와
‘안면마비’라는 단어가 줄지어 표시되었다.

신경과를 방문해 보라는 글을 보고 곧장 신경과로 달려갔다.
신경과는 난생처음 가봤는데 진료 내용에
안면마비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제대로 왔다 싶어 잠시 안도했지만,
의사의 냉담한 반응에 나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선생님, 눈이 감기질 않는데 잘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서럽고 막막했다.

 

 

 

곧장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며 약을 처방해 줬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두려운 생각에 다른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생각도
고민도 걱정도 좀 내려놓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그래야 빨리 완쾌된다고 했다.

이후 괜찮아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외관상 차도는 거의 없었다.
결국 과거에 자주 다녔던,
아주 친절한 의사선생님이 계시는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선생님은 안면마비(벨마비)의 7레벨 중
5.5~6레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 병원에서
어떤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적어주시고
오랜 시간 설명과 질문에 답변해 주셨다.
참 감사했다.

 

 

 

나는 두려움과 불편함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곧장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권했던 한방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또 잘 때는 테이프로 눈을 고정시키고
인공눈물을 자주 넣으며 눈을 관리했다.
그렇게 4개월쯤 흘렀을까? 드디어 왼쪽 눈이 남기기 시작했다.

눈을 깜빡이면 두 눈이 동시에 감기고
안면 근육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골든타임을 놓쳤거나 관리가 부족했던 때문인지
안면 연합운동과 비대칭이라는 후유증이 남았다.

날씨가 추워지면 근육이 더 굳어지는 것 같았고,
원하지 않아도 자주 눈물이 흘렀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한건 변해버린 외모였다.
누군가 내 얼굴을 쳐다보면 괜히 눈길을 피했고
대화를 나눌 때면 다른 곳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평소 좋아했던 사진 찍는 것도 점점 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3~4년쯤 흘렀을까?
1~2년 차에 보였던 증상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러려니 하고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거울을 보면 ‘그래⋯ 이만한 게 어디야’라고 생각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에 괴로워하기보다 이만큼 회복된 것에
감사하고 내 모습을 소중하게 여기고 수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며 조금씩 긍정적인 희망을 그려갔다.

덕분에 후유증을 호전시킬 수 있는 치료 방법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틈틈이 시간을 내어 후유증 치료를 받으며
나의 외모와 마음가짐을 돌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혹시 여러분 삶의 마비는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마비란 심신이 아프거나 혼란스럽고
괴로워 본래의 기능과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마비는 어느 순간에나 다양한 형태로 찾아올 수 있다.

문제는, 타인은 그 크기를 가늠하지만
자신에게는 아주 크게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내 마비를 아주 단순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서럽고 서운하기도 하고 가끔은 분하기도 하다.
처음 방문했던 병원에서처럼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달고 오는 격이 되고 만다.

 

 

 

사실 마비를 해소하는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자립을 준비하고 당당히 홀로서기를 했다고
자부하는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글을 통해
내 이야기를 나누고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삶의 마비를 풀어가는 것은 내 몫이고 내 의지라고.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보며
수용하는 태도가 점점 단단해지면 지금 심각하게 겪고 있는
마비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마비가 좀 더 유연하고 빠르게,
또 쉽게 해소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만약, 지금 일상에 감정의 마비, 생각의 마비,
상황의 마비 등 너무 많은 마비가 찾아와 있다면,
다음의 티베트 속담을 한 번쯤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찰나의 순간이라도 내게 찾아온 마비를 잠시 관찰하고
알아차림으로써 현명하게 누그러뜨리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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