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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 에세이집 《나의 단어》세 번째 이야기
다원이의 단어, ‘간호사’

2024.10.24

  • #자립준비
  • #위드유커뮤니티
  • #자립준비청년

《나의 단어》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실시한
자립준비청년 자조모임 ‘위드유 커뮤니티’
활동 결과물로 제작된 에세이집입니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란?
아동 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에서 생활하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어 생활하던 시설에서 나와
홀로 자립해야 하는 청년을 뜻합니다.

 

5명(김남중·김윤경·박태양·안준·이다원)의 자립준비청년들은
세방이의순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된 위드유 커뮤니티를 통해
에세이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단어를
4가지씩 선정해 자기만의 소중한 추억과 행복한 경험,
꿈과 다짐이 담긴 글들을 작성했습니다.

그 글들 중 감동을 주는 에세이를 하나씩 뽑아 5회에 걸쳐
<홈페이지 스토리>와 <홀트소식>에 싣습니다.

이 글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이 만들어가는 희망찬 미래에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서 제일 많이 만나는 사람이 누굴까.
나는 간호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간호사이기에 더 와닿는다.

환자가 가장 아플 때 환자 옆에서 환자를 파악하고,
옆에서 아픔을 위로해 주며 일차적인 고통에 도움을 주는 사람.
나는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간호사가 되어 행복하다.

 

 

 

간호사라는 꿈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만남이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꽤 오래 계셨다.
초등학교 땐 수업을 마치고 남들처럼 집에 가는 대신,
병원에 가서 할아버지 옆에서 도란도란 떠들다가
옆자리 언니와 친해져 병원 편의점을 자주 가던 아이였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안 좋아지셨을 때, 내 곁에서
“할아버지는 금방 나으셔서 다원이랑 집에 가실 수 있을 거야.”
라며 위로해 주던 간호사 언니가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부터 간호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크게 다가온 것 같다.
내 유일한 보호자가 떠나지 않을 거라고.
내 곁에서 건강하게 있어줄 거라고
믿음을 심어주어서 그런 것 같다.

그날부로 간호사는 나에게
절망 앞에서 싸울 힘을 준 사람이 되었다.
긴 세월 동안 할아버지가 빛을 잃어가기까지.
내 곁에서 등을 토닥여주던 그 손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중학생이 되어 장래 희망을 제출해야 했을 때는
막연하게 학교 선생님을 적어냈다. 그때까지 가장
많이 만나는 존재가 선생님이어서 그렇게 적은 것 같다.

중학생 때는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그때 내 주위 어른들은 나에게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했다.
힘든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려면 스스로를 지켜야 했기에
나에게는 공부가 수단이었다. 나를 지켜내기 위한 힘.
딱 그 정도.

그리고 보육원에서 외로움과 끝없는 우울을 견뎌내느라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나의 빛이었던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안 계시고,
생판 모르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적응하고 버텨내야만 했던 시절.

그때는 잠시 ‘간호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준 따뜻한 감정들을 잊고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어 진로를 정할 때, 다시 간호사가 떠올랐다.
앞날을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서였을까.

휘몰아치는 세상에 첫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나에게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취업률’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해준 직업이 간호사였다.

멋지고 당당한 어른이 되길 원했던 나에게 간호사는 그저
세상에 ‘1인분을 할 수 있는 어른 이다원’이 되는 수단이었고,
내 미래에 대한 안정적인 투자였다.

문득 ‘초등학생 때 간호사가 되고 싶어 했던 거 같은데
그땐 왜 그런 장래 희망을 꿈꿨지?’라는
기억을 떠올리려 했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벅찬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릴 적 기억을 생각해보는 데
힘을 뺏기지 않으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썩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간호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간호학과에서 공부와 실습에 치이다 보니
어릴 적 간호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주었던 꿈과 희망은
나에게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나름 열심히 공부해 앞자리를 차지했던 내가
대학 간호학과에선 저 뒤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도 한참 부족하고
뒤처진다고 느낄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친구들과 공부하다가 아무리 해도
오를 수 없는 벽에 부딪쳤다고,
이것이 나의 한계라고 느끼며 운 적이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간호사를 하겠다고 했지?’
나에게 끊임없이 되물었다.

안정적인 직장이야 간호사가 아니어도 충분히 많고,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도 여러 군데 있었는데
왜 굳이 내가 간호사를 선택했을까?

 

 

 

의학용어를 외우다가 지쳐 잠이 들었던 어느 날 밤,
어린 시절의 순간이 꿈에 나왔다.

할아버지 병원 생활의 시작과 끝을
간호사와 함께하며 포근한 위로를 받았던 순간.


그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펑펑 울었다.

내가 간호사에게 받았던 따뜻한 마음과 손길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은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현실에 지쳐서 잊고 살았구나···.

그날 이후로 간호사 이다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를
명확히 찾아냈고 마음에 새겼다.

 

 

 

이날 다시 찾은 내 직업의 이유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
간호학과 학생으로 실습 1,000시간과
방대한 공부량을 이길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국가고시를 치르고, 병원 면접을 보고,
현재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이제 간호사로서의 첫 시작인 만큼, 내 어린 시절을 따뜻하게
품어주던 간호사의 모습을 잊지 않고, 나도 어느 환자의 시작과

마지막을 따뜻하게 지켜줄 수 있는 간호사로 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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